7,     현모양처(賢母良妻)로서의 부도(婦道)와 학예(學藝)

부도(婦道)란 글자 그대로 아내의 길, 좀더 넓은 뜻에서는 여성의 길이 될 것이다. 부도에 대한 가르침은 이미 제5장 자녀교육과 그 목표에서 살핀 바다. 자녀들을 가르침에 특히 매창(梅窓)을 비롯한 세 따님에게는 부공(婦功)과 학문과 예술을 익혀 장차 현모양처로서의 덕을 기르도록 하기에 힘을 썼다.

사임당은 소녀시절부터 시, 서, 화의 여류 명인이었을 뿐 아니라, 학문도 능란히 하고 또 바느질과 자수등 가사의 부공에도 정묘(精妙) 하였다. 전통사회에서의 침선(針線), 방적(紡積), 자수(刺繡),등 가사기술은 위로 사대부(士大夫)의 가정으로부터 아래로 서민에 이르기 까지 여성이면 누구나 습득해야 할 일이었으나 사임당의 기량은 뛰어났으며, 매창(梅窓) 역시 그 어머니의 솜씨를 배워 조선시대에 이름을 떨치었는데 모두 그 어머니인 사임당의 영향이라고 하겠다. 이 뿐만 아니라, 사임당은 또 매창 형제들에게 부공과 근검절약의 생활을 가르치기도 했다. 즉

「살림에 쓰이는 기구가 깨끗하고 질박하면 토기그릇이라도, 쇠 그릇이나, 옥 그릇보다 좋고, 음식을 깨끗이 하고 정성껏 만들면 채소라도 진수 성찬보다 나으니라.」고하면서,

또 근검절약의 정신을 훈계했다.

반드시 검소하고 재물을 절약하여야 하고 잔치 집에 가서는 절대로 오래 앉아 있어 폐가되지 말게 하라.」고했다. 또

「재물이라 하는 것은 한이 있고 쓰기는 무궁하니, 흩은 밥과 흘린 쌀을 낱낱이 수습하여 뜰과 개천에 흩어지지 않게 하라.」고 가르치기도 하였으며, 또

「잠자기를 탐하여 일찍이 일어나지 아니함이 부인의 악덕(惡德)이라, 늦게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라.」고 훈계했다.

사임당의 생활 역시도 이같이 하였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사회활동을 한다고 집에 와서는 피곤해 잠들어 버리는 어머니, 자녀의 도시락 반찬이 무엇인지 아침을 제대로 먹고 학교에 갔는지조차 모르는 게으른 어머니가 많다.

이런 가정에서는 올바른 감정의 교류가 가족간에 이루어질 수가 없음은 물론이요, 그 자녀들에게 근로의식을 생활화 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정생활에 있어서는 아직도 여성이 가사를 떠맡는 것이 정상적인 일임에 말하고 있는 부공은 가정부가 있고 없고 간에 가정의 주부라면 가사를 돌보고 또 돕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또 사임당은 그 자녀들에게 학문은 말할 것도 없고 시, 서, 화를 골고루 가르쳐 율곡의 누이인 매창의 시화
(詩畵)와 동생인 옥산(瑀우)의 서화는 다른 사람이 따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야말로 어머니의 모든 장점을 하나도 빠짐없이 배웠다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사임당은 위로 친정어머니 李씨 부인과 아래로 큰딸 매창과 함께 모계(母系) 3대를 통하여 길이 빛나는 존재이며 또한 세계 여성사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가계(家系)라 할 수 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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