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申師任堂)   1 5 0 4 ~1 5 5 1

 

  

조선시대 여류문인, 서화가 신사임당은 호이며,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율곡 이이(栗谷 李珥)의 어머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 하고 자수(刺繡), 바느질, 솜씨가 좋았으며 특히 시와 그림에 뛰어났다. 자녀교육(子女敎育)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예술(藝術)에도 뛰어났을 뿐 아니라 훌륭한 효녀로서, 훌륭한 어머니로서, 또 어진 아내로서 우리나라 여성의 모범이 되어 오늘날에도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자녀교육은 누구보다도 어머니의 정성된 힘이 매우 크다. 자기자식이 공부 잘하고 남에게 뒤지지 않는 자녀되기를 누구나 원한다.

그러나 정성과 마음만으로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요즘에는 국가교육기관, 많은 교육학자, 수많은 교수 및 교사가 있어 교육목표가 뚜렷이 세워져 있고 또 각 사설 학원도 있고 부모들도 수준급(水準級) 교육 이수 자이지만,
그시절은 자녀교육 체계가 뚜렷하지 못했으며 부모들도 그의 문맹자(文盲者) 이었습니다.

특히 여자 교육은 완전히 없는 상태에서 신사임당은 자아개발(自我開發)을 완성하여 체계(體系)가 확실한 목표를 세워 인간적인 인재(人才)를 길러내는 가공(可恐)할 만한 일을 해 낸 것이다.

 

 오죽헌 그림
             

   

  1920년 김경수가 그린 오죽헌 전경이다.
       
 오죽헌은 신사임당의 외조부 이사 온 집이었던 것을 무남독녀 이씨 부인이 상속 받았다. 이씨 부인은 서울  신명화공과 결혼 다섯 딸을 두었으니 그중에 둘째가 신사임당이다.

신사임당은 서울 이원수공에게 시집을  갔으나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하여 이곳 친정에서 지내는 때가 많았기 때문에 율곡선생은 이 집에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외조모 이씨 부인이 90세로 세상을 떠나자 분재기 에 따라 율곡의 이종 제 권처균 에게 상속되었으며, 오죽헌이란 명칭은 집 주위에 오죽이 많아 권처균의 아를 오죽헌이라 부른데서 비롯된 것이다.

 1788년 율곡선생의 친필 격몽요결 과 벼루를 보관하는 어제각을 건립하였다. 1961년 11월 제1회 율곡 제전을 시작으로 그 이후 매년 10월에 봉행 하고 있다. 오죽헌은 1963년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으며, 1975년 10월 오죽헌 정화 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으로 단장되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