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향학의 길

     몽룡실 내부

◁ 천정의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으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랜 된 주택 건물의 고풍이 돋보인다.

       

성현(聖賢)의 말씀에 마음을 지니고 조용히 마음을 가라 안쳐야 될 때가 많지만 사임당은 그 중에서도 「지재사방(志在四方)」이란 말을 좋아했다.
그는 뜻을 세우면 학문은 물론이요, 입덕
(立德), 입공(立功), 입언(立言)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뜻을 세움의 모범된 사람이 되어 자제들을 가르침에 늘 이를 돈독하게 갖도록 힘썻다.

우리가 장차 걸어갈 일생의 목표를 뚜렷이 정하고 한결같이 이를 힘써 나가려면
뜻을 세움보다 더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르나 이는 스스로 판단 하는 능력에서 출발하는 마음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디서 뜻을 두는가 공자는 논어에서 「도
(道)에 뜻을 둔다(志於道)」라고 하였다. 그래서 공자는 「吾十有五而志學(오십유오이지학)」이라 하여 뜻을 세움의 중요성을 아래와 같이 말 한적이 있다.

「나는 열 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는 생각이 바로 섰고, 마흔 에는 모든 사리에 미혹
(迷惑)하지 아니하였고, 쉰에는 하늘에 도리를 깨쳤고, 예순에는 모든 일을 들으며 저절로 알게 되었고 일흔에는
하고 싶은 대로 다해도 법도를 넘은 적이 없었노라.」하였다.

그러니 뜻의 세움은 마음이 어떤 방향을 결정 짓고, 이를 마땅히 행할 것을 뜻한다. 즉 자기지향적인 마음의 자세이다.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하여는 의욕이 움직이지 않는 한 그 일에 열중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일을 훌륭하게 이루어 보겠다는 강한 의욕은 실제로 어떤 일을 성취하려는 행동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누구나 어려운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가장 근본이 되는 요건이 확고한 마음의 자세인 것이며, 그것이 곧
뜻의 세움이다,

그래서 사임당은 부군의 가르침에서 그러했듯이 그 자제들에게도 항상 배움을 익힐 때마다 공부하는데는 먼저 뜻의 세움을 성실하게 하여야 한다.」고하고   때로는 「뜻을 받는다는 것은 그 의지를 숭상하는 바를 받는 것이다.」라고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뜻이 서지 않으면 만사가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였고, 배우는 이가 종신토록 글을 읽어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뜻이 서지 않는 까닭이다.라고 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학문은 뜻의 세움을 먼저 하는 것이 필요하다. 뜻의 세움이 극히 높고 크지 못하면 나아가는 바가 반드시 낮을 것이다.」라고 충고하면서,

또 논어 양화편
(陽貨篇)의 말 가운데 「본래 사람의 천성은 대개 같은 것이나 습성은 서로 먼 것이라(性相近也, 習性遠也성상근야, 습성원야.)」는 것을 풀이하여 설명해 주기도 했다.

이러한 뜻의 세움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율곡도 그 어머니 사임당의 가르침에 따라 뜻의 세움을 돈독히 하여 자기를 깨우치면서 대성했고, 그 자신도 제자들을 가르침에 있어서 항상 「배움은 뜻의 세움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라고 하여

학문의 첫 출발로 삼았다. 그래서 율곡의 입지에 대한 생각은 자경문
(自警文) 에서부터 학교모범(學校模範)에 이르기 까지 그의 생애를 통하여 변함없이 추구되어 온 교육사상이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사임당이 그 자제들에게 가르친 뜻의 세움은 교육이념의 목표인 동시에 성취동기가 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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