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 時 烈 (송시열)     1 6 0 7 - 1 6 8 9

 

 

     

 조선중기의 학자, 호는 우암(尤庵) 시호(諡號)는 문정(文正)이다.

1633년에 생원 시험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경릉 참봉을 거쳐서 봉림대군의 스승이 되었다.

그 뒤 효종, 현종에게 등용되어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에 올랐다. 서인의 거두로 있으면서 남인과 예론에 대하여 서로 다투기도 하였다.

한때 남인에게 몰렸다가 다시 정계에 나와 이름을 떨쳤으며 서인이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자 노론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1689년에 왕세자 책봉에 반대 상소를 했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제주도로 귀양 갔다. 그 뒤 서울로 심문을 받으러 오던 도중 정읍 에서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주자의 대가로서 이이의 학통을 이어받아 기호학파의 중심 인물로 활약했다. 성격이 과격하여 많은 정적을 두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훌륭한 제자를 많이 길러 냈다.

   

▽ 송 자  대 전 판

유형문화재 제 1호 (동구 가양동 67) 우암 송시열 선생의 
문집판목 11,023판이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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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애 명 문

자하동은 관악산에서 가장 넓은 계곡에 속하는데 계류의 서쪽 암벽에 자하 및 송시열 선생이 쓴 마애명문
이 있다. 단하시경 자하동문, 백운산인 자하동천은 시,서, 화의 삼절인 자하선생의 친필이고 "상첩석공중만 인 조난분처우개상공 시비성도이고 교유수진 총산"은 최치원 선생이 지은 시로 우암서란 명문 으로 보아 송시열 선생이 쓴 것으로 보인다.

▽우 대

송시열(1607∼1689)의 글씨로써 정치학자이며 (호)우암으로 노론의 거두이였으며 주자대전 중 저서가 약 100 여권 있다. 조선왕조 김장생의 제자이며 김장생이 안성에 있음에 이곳에서 수학하며 당시의 글임. 도기서원과 도기리 입구에는 정자가 있었으며 글씨있는 곳은 영귀정 모퉁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 우대는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다

 

 

▽  선 유 담

고성군 죽왕면 공현진리 오음산밑에 신라시대에 영랑, 남랑, 술랑, 안상등 4선이 장기바둑을 두며 놀았다는 전설을 지닌 선유담이 있었다.
선유담은 산록에 둘러 쌓여 있는 연못으로 작은 봉우리가 절반쯤 못에 담겨져 있었고, 주변에 노송이 많았으면 반석 위에 가학정이 세워졌고 각종 꽃나무가 만발했으며 연못엔 순채화가 가득한 절경이었다.
또한 주변반석에 1675년으로 추정되는 우암 송시열 선생의 친필 "선유담"이 새겨져 있으나, 오랜 풍상에 형체가 희미해져 가고 있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 선유담이 기술된바 있다.
-1675년으로 추정되는 우암 송시열 선생의 친필.

 ▽ 환벽당 현판

                  우암 송시열의 글씨이다. (기헌)

                                                                                               <감사합니다>